4차 산업혁명이란? – 문과생들이 취업이 안 된다?

요즘 신문 기사들을 보면 기업들이 채용하는 인재의 대다수는 이과생이고, 문과는 그나마 상경계가 금융권에 취업하는 정도, 심지어 금융권도 상경계 출신보다는 공대 출신을 더 좋아한다는, 취업시장에서 문과 졸업생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여러가지 통계로 설명한다.

필자도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문돌이”지만, 솔직히 저런 기사들을 보면 속이 시원하다. 이제야 노동 시장이 좀 제대로 돌아가는구나 싶다. 왜 너도 문돌이면서 이런 생각을 하냐고? 일단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위해 학창 시절 이야기를 좀 해보자.

1. 학창 시절 이야기

필자가 다닌 학교의 경제학부는 당시 한 학년에 20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고, 그 중 1/3 정도가 사법, 행정, 외무, 입법고시 + CPA에 집중하는 친구, 1/3 정도가 금융권 공사에 취직하려고 준비하는 친구, 1/10 정도의 유학 준비파, 그리고 여기저기 손 대보다가 대형 은행, 증권사, 대기업 가던 친구와 필자처럼 외국계 증권사와 전략 컨설팅 회사에 목을 매고, 연줄 없으면 얻기 힘든 인턴 자리 하나 구할려고 엄청나게 고생하는 약간의 모험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다른 준비를 하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워낙 소수여서 기억이 잘 안 난다.) 우리들 중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이단아를 제외하면 경제학부 졸업생 타이틀을 달고 살기 위해서 경제통계학과 계량경제학은 필수 과목이라고 생각하는데, 계량경제학 수업을 듣고 졸업한 친구들이 전체 졸업생의 절반 남짓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이 수치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거기다, 한 학년이 200명이나 되니 경제통계학, 계량경제학 수업이 여러명의 교수님이 나눠서 수업을 열고, 교수님마다 수업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그 중 유학 준비파 친구들이 자연대에서 선형대수, 미분방정식, 해석개론, 회귀분석, 수리통계 수업을 다 듣고와서도 버거워할만큼 “어렵게” 가르치는 교수님도 있었고, 직관 위주로 쉽게 가르쳐주시는 교수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직관 위주의 수업도 좋아하고 그렇게 가르칠 수 있는 심후한 내공을 갖추신 그 교수님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으로 바라보지만, 우리과에 그 수업 찾아갔던 친구들 중에 그 직관에 대한 갈망을 가졌던 친구는 아직까지 딱 한 명 밖에 본 적이 없다. 참고로 그 친구는 유학 준비파들 수업을 다 듣고, 박사 유학가기 전 학기에 좀 새로운 시야로 통계학을 다시 보고 싶다는 이유로 그 수업을 들었다.

 

그 “직관” 위주의 수업을 들어갔던 친구들이 흔히 했던 말이, “내가 수학 실력도 안 되는데…”, “그거 수학 엄청 쓴다매?” 등등의 표현이었는데, 밖에서 우리나라 최고학부라고 불리는 학교에, 문과에서 수학 제일 잘 하는 애들이 모였다는 경제학부생들도 수학 실력이 안 되어서 직관 위주의 통계 수업으로 도망갔다는게 씁쓸한 현실이다.

상경계열 학생이면 누구나 다 알겠지만, 경제학과 경영학은 항상 서로 은근한 경쟁심을 갖고 반대편을 “디스”한다. 몇 가지 소개하면, 우리과 교수님들이 수학/통계학적인 모델링을 못하는 학자들을 “사회학자”라고 좀 폄하 섞인 평을 하시는데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거기에 좀 화려한 용어가 섞인 사회학적인 연구물을 보시고는 “이건 사회학이 아니라 경영학과 논문인거 같은데?”라고 농담을 하는 경우를 봤고, 반대로 경영학과에서 수학 공부 제일 많이하는 재무 수업을 듣고 있다보면, “자산 시장 버블은 어떻게 확인하느냐? 상아탑에만 있는 문과 교수들이 투자하면 그 땐 진짜 버블이지. 근데 말야, 경제학과 교수들이 투자한다고 그러면 그 땐 진짜 팔고 떠야해.” 같은 농담을 흔히 듣는다.

위의 두 일화를 놓고보면, 문과에서 수학 공부 제일 많이해야하는 경제학부 졸업생도 제대로 수학과 통계학 공부를 안 하고 졸업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문과 교수들 중에 가장 수학에 노출이 많은 분들이 서로를 낮추는 농담을 할 때 수학 실력이 없다는 내용과 현실에 무지하다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취업 시장 or 우리나라 산업구조

그럼 취업 시장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좀 더 정확하게는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를 봐야한다.

일단 기업 업무에서 연구, 생산 인력을 뽑는 자리에는 문과 출신이 발 붙일 자리가 없고, 그나마 문과가 갈만한 곳이 금융, 영업, 경영지원 정도인 것 같은데, 이제는 금융권에서도 단순하게 주식을 사고파는게 아니라, 수학이 많이 들어간 금융상품을 취급한다. 영업직도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팔아야하는 상품이 훨씬 기술적으로 복잡해졌고, 당연히 그런 기술을 다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영업에 써야 고객들의 요구사항에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다. 필자가 한국와서 잠깐 있었던 모 외국계 리타게팅 광고 회사에서 세일즈가 필자에게 했던 질문들의 대부분은 사실 데이터 베이스의 구조만 이해해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문과 출신이고, 수학 공부만하다가 직장에 돌아간 필자도 며칠동안 데이터 베이스 구조보고 나면 이해가 되는데, 이걸 자료를 줘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세일즈 팀 사람들을 보면서 깝깝했다. 심지어 광고업에도 이렇게 기술적으로 복잡한 상품이 등장하고, 기본적인 기술을 이해해야 영업을 뛸 수 있는 시대가 왔는데, 그걸 가르치도 못 따라올 것 같아 보이는 문과 출신을 왜 영업직에 뽑아줘야할까?

물론, 이런식으로 인재를 활용 못하고 있는 노동 시장의 비대칭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정부가 내놓은 방안도 초등교육부터 코딩을 가르쳐서 취업 연령층이 코딩에 두려움을 느끼지 말도록 하자, 문과라도 어느정도는 기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하자는 취지인 것 같아서 공감이 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문득 든 생각이,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실과시간에 GW-Basic으로 간단한 For-Loop 함수를 써서 사칙연산을 하는 코딩(?)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실과 선생님도 GW-Basic을 한번도 써보신 적이 없었는지 강의안과 다른 코드를 쳐서 드리니까 틀렸다고 감점을 시켰다가, 결과값이 똑같이 나오는 걸보고 다시 맞다고 해 주셨던 일이 있었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 1. 요새 누가 GW-Basic 쓸까? 나중에 윈도우 시대에 나왔던 Visual Basic도 제대로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시대가 왔는데, 초등학교 때 배운 프로그램이 취업 연령이 되었을 때도 계속 쓰인다는 보장을 할 수 있을까? 2. 선생님은 코딩 전문가가 아니라 강의안만 겨우겨우 따라가는 수준일텐데, 도대체 능력있는 선생님은 어떻게 구할것이고, 초등학생들한테 어느 수준까지 코딩 교육을 시켜야할까?

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Visual Basic으로 알카로이드 (벽돌깨기) 게임 만들다가 수능 모의고사 점수가 30점 떨어지는 바람에 폭풍 매질을 당하고 집 안의 컴퓨터를 팔아치웠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필자는 과고도 아니고 외고 출신이다 ㅎㅎ) 그 때 코딩이라는 걸 좀 구경해 본 덕분인지 학위 과정 내내 Matlab과 R로 작업하면서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만약 그 정도의 친근함이 목표라면, 우리나라 초등교육에 코딩을 포함시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사회학 계열 문과 박사들이 코딩이 들어가지도 않는 STATA를 가지고도 쩔쩔매고, SAS나 SPSS로 모든 데이터 다 입력해보고 결과값 제일 좋은 (R-squared 값이 제일 높은) 변수 조합 골라내는 식의 깝깝한 “연구”를 하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겠지…

다만 필자 생각에는 코딩 이전에 뭘 코딩해야하는지에 대한 내용, 즉 수학과 통계학 교육이 좀 더 깊은 수준으로 선행되는 것이 진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준비가 아닐까 싶다. 당장 초등시절 GW-Basic을 배우던 필자가 For-Loop로 했던 연산은 고교 2학년 때 배운 수열 계산이었고, 그 책에는 함수 구현, 미분값 찾기, 함수의 수렴 여부 찾기 등과 같은 예제들이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리고 이런 예제들이 사실 높은 수준의 프로그래밍에도 분명히 쓰이는데, 정작 이런 내용 없이 그냥 화면에 그래프 띄우기 같은 1차원적인 교육만 될 것 같아서 좀 안타깝다. 고교시절에 학생들이 수학에 버거워하니까 화면으로 그래프를 띄워보는 수업을 하셨던 선생님이 3차 방정식의 근을 찾아 그래프를 보여주실 때, 카르다노의 공식을 활용하려고 3차 함수와 2차항 소거 목적의 함수를 결합하는 코드를 짜시는 걸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문과라도 수II를 보고 카르다노의 공식에 관심이 있었던 필자니까 고교시절 선생님이 쳤던 Visual Basic 코드가 이렇게 오랬동안 기억에 남는게 아닐까?

3. 수학 공부를 왜 해야되나?

지난달 수업이 끝나고 학생 하나의 수강 후기를 받았다.

“(중략)… 수강목표로는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적당히 라이브러리를 호출해 결과값을 비교해보는 방식은 항상 핵심을 외면하는 느낌이였습니다. 마음속에 기술적 부채를 갖고 있었죠그러다 강사님 블로그를 보고, 이번 기회에 알고리즘 기저에 깔린 수학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수학실력으로는 턱없는 목표였죠. ..(중략).. 강사님이 수식을 정말 쉽게 설명하려 노력하셨고, 또 설명하셨지만 그 떠 먹여주는 숟가락도 뱉어낼 수학실력이여서 스스로 원망했네요. 왜 수학공부를 안했는지…(중략)”

분명히 필자의 강의에 쓰는 수학은 경제학부 시절 들었던 경제수학, 경제통계학, 그리고 아주 약간의 계량경제학이 전부다. 그것마저도 안 쓰면 저 위의 수강생이 말씀해주신대로 핵심을 외면하고 기술적 부채를 안기면서 수업을 하는 것 같아, 양심에 너무 찔려서 도저히 타협을 할 수 없는 마지노선까지 수학 수준을 내려놨다. 같은 내용을 듣고 있는 컴공 교육자 분은 필자더러 수학을 어디에서 타협할려는지 고민한 흔적이 참 많이 보인다는 평도 주시더라. 그래도 기본적인 수학 실력이 있어야 필자의 수업을 따라오고, 데이터 사이언스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외부 강의나 교재 제작 관련해서 담당자 분들과 이야기를 하면, 6차 교육과정 이후의 문과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만한 수업과 교재를 만들 수 없냐는 질문을 참 많이 한다. 아마도 그 분들의 지갑이 열려야 돈 벌이가 될 테니까? 그 05학번 이후의 문과생들이 경제학부에 들어와서 미분 모른다고 하소연을 하는 바람에 겨울 방학 때 교수님 몇 분이 미분, 적분 특강을 열었던 기억이 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만큼 수준을 낮추면 핵심을 외면하고 기술적 부채를 안기는 수업밖에 할 수가 없다. 양심에 너무 찔린다. 그런 코드 몇 줄 돌아가는걸 줏어들은 지식으로 어디서 이윤창출을 할 수 있을까?

나가며

문과생들이 취업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위의 일화들의 총집합일 것 같다. 수학이랑 통계학 잘 모르고, 기술적인 이해도가 부족하고, 새로운 기술 가르쳐줘도 머리가 굳어서 쉽게 못 쫓아오니 기업에서 월급주면서 데리고 있을 수 있을까? 필자도 문돌이지만, 돈 값 못하는 직원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학에서 미분, 적분을 다시 배워야할 만큼 준비가 엉망인 예비 직장인들에게 수학이 잔뜩 들어간 상품을 만드는 자리는 커녕 그런 상품을 파는 일자리라도 줄 수 있을까?

기업이 한 직업인에게 연봉으로 5천만원을 준다는 이야기는, 그 직원이 최소한 3-4억은 벌어와야 된다는 뜻이다. 그래야 세금도 내고, 4대 보험도 지원하고, 사내 복지도 유지하고, 건물 유지비 등등의 각종 부대 비용도 쓰면서 동시에 회사의 이윤도 창출할 수 있다. 취업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회사가서 교육받고 회사에 연간 3~4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안 보인다는 뜻이거나, 혹은 그 시간이 매우매우 많이 걸릴 것 같고, 다른 후보자들은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그 레벨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한 줄 요약하면, 요즘들어 문과가 취업이 안 되는건 4차 산업용 코딩 교육이 없어서가 아니라, 문과생들이 고등학교에서 너무 부실하게 교육을 받았고, 대학에서도 기업들이 원하는 수준의 기초 교육을 못 받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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